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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왜나무

종톨녀 / 트리거 주의

아왜나무는 잎에 수분이 많아 불에 잘 타지 않는 성질이 있다. 그로 인해 산불을 막는 방화수로 심는다. 날짜 없이 일기장에 적혀 있었다. 누군가에게 빠진다는 것이 뜨거운 것이 가슴 속 빈 공간을 휘젓는 느낌이 들게 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 구절을 통해 최종수는 주찬양에게 빠져든 날을 기억하게 되었다. 언제 시작된 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는 기억하지 못 했다. 그도 모르는 사이 열병의 날들이 시작된 것이었다. 첫인상은 성적인 끌림을 유발하기에 지나치게 수수하게 생겼다는 것이 전부였다. 큰 외꺼풀 눈, 키에 비해 얇은 뼈대, 긴 바지 아래에 이따금 드러났던 흰 발목. 그 이미지들이 주찬양을 이루고 있었다. 되짚어 보면, 얼굴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얼굴을 기억하는 날들에도 그랬다. 얼굴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자세히, 오래 주찬양도 모르는 사이에 오랫동안 들여다봐야 했다. 잘 모르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할 수는 없었다. 잘 모르다 보면 이미지를 멋대로 왜곡시키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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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상녀 / 트리거 주의 / 날조 주의

나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무교인 아들이었고, 그 애는 무당 집 딸이었다. 그리고 고등학교는 약육강식의 특징을 지닌 서열 사회였다. 나는 든든한 부모님, 뚜렷한 이목구비, 큰 키 덕분에 모두 나를 어려워하는 동시에 동경했다. 눈치가 빠른 편은 아님에도 금세 알 수 있었다. 그 애는 나와 반대의 처지였다. 무당 집 딸이라는 이유로 겉돌았다. 소문이 돌았다. 무당집 딸인데 점은 볼 줄 모르며, 귀신을 본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애는 귀신을 본다는 소문으로 인해, 학교 일진들이 그 애를 종종 학교의 심령 스폿으로 소문이 난 곳에 가둬 두곤 했다. * 사람에게는 타고 나는 결이라는 것이 있다. 그 애는 외로운 사람의 결을 타고났다. 처음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나도 외로운 사람의 결을 타고났다. 그래서 그 애와 친해질 수 있었다. 친해진 첫날에 나는 그 애에게 귀신을 정말 보냐고 물었다. 그 애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뜬금없이 나를 그 애의 집으로 초대했다. 어머니는 굿을 하기 위해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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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 학년

트리거 주의

소녀는 중학교 2 학년이 되었다. 중학교는 분명히 서열이 정해진 사회 체계의 구조를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한 소년을 만났다. 소년은 처음 보자마자 소녀를 의식하고 있었다. 소녀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녀가 서열이 낮은 편이었으며, 휘두르기 쉬운 인물로 보였기 때문이다. 소년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소년은 소녀를 어떻게든 휘두르려고 했다. 그는 어린 나이임에도 이성 경험이 많았고, 이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니 소녀를 휘두를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소녀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소녀는 소년을 끝까지 무시했으며, 소년에게 휘둘리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휘둘리지 않았다. 휘둘리지 않는 소녀에게 소년은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소녀가 궁금해졌다. 소녀는 바뀐 소년의 변화를 알아챘다. 소년이 달갑지는 않았으나, 동시에 달가웠다. 소년을 한 대 때리고 싶었으나, 동시에 그의 머리를 만져 보고 싶었다. 소년의 접근은 원래 치밀하고 간접적이었으나, 소녀에게 끌리기 시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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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종톨녀/트리거 주의/날조 주의

자다가 깬 최종수는 눈을 뜨면 안 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자각했다. 그렇지만 미친 듯이 떨리는 눈꺼풀로 인해 눈을 뜨게 되었다. 얼굴 위에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날카롭고 차가운 감각이 얼굴로 번졌다. 뺨으로 손을 뻗어 물방울을 닦으려고 했으나, 그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다시 눈을 감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눈을 깜빡이는 것 뿐이었다. 그때 갑자기 눈앞에 흰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소녀가 그의 몸 위에 있었다. 소녀의 얼굴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소녀는 앳된 목소리로 그에게 말을 건넸다. 선배. 여기는 너무 추워요. 같이 고여 주세요. 깊은 곳에요. 사람이 아님이 분명했으나 두렵지는 않았다. 그는 이미 그 소녀를 오랫동안 알았던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밥을 먹을 때도, 훈련을 나갈 때도, 혼자 불면을 견딜 때도 그 소녀가 함께 있었던 듯했다. 마치 그의 일상에 감겨 있었던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한참이고 소녀와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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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는 것들

헤어질 결심 오마주 / 종상녀 / 트리거 주의

무당이 되려고 앓는 무병과, 그저 귀신을 보게 하고 점을 잘 보게 해 주는 신병이 있다. 기상호는 어느 쪽이라고 하느냐면, 신병이었다. 원인 없고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비주얼 스노우라는 병을 앓았다. 밤낮으로 보이는 색깔 알갱이들, 이명, 비현실감, 편두통 전조 증상을 눈 떠서부터 눈 감기 전까지 앓는 신경과 희귀질환이었다.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해 보아도 그녀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으며, 그 질환에는 잘 맞는 약 또한 거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견디면서 살았다. 그리고 견디는 것은 그녀가 가장 잘 하는 것이었다. 1 초에 한 번씩 느끼는 고통을 그녀는 혼자서 견뎠다.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되뇌며 말이다. 그녀는 언변에 능한 편이었다. 또한, 신병을 앓는 사람들은 점을 매우 잘 봤으며, 그녀 또한 그들 중 하나였다. 그녀는 그래서 부산의 한 가게에서 사주와 타로를 봐 주면서 지냈다. 용하다고 소문이 났다. 그러나, 그 능력은 공짜가 아니었다. 그녀는 방어막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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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새

종톨녀 / 트리거 주의 / 날조 주의 / 개인 해석 주의 / 센티넬 버스 AU

https://www.youtube.com/watch?v=q1V7ylVP7Bs&list=PLrLh0Vet5pcLKt2YC3iI-P-i4fjc_6M-a 선배. 저는 너무 많은 약물 주입으로 인해 벌집 같아진 제 손목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제 몸 위에는 흰 천이 덮여 있었죠. 그 누구도 말해 주지 않았는데 저는 알 수 있었어요. 나는 죽었구나. 할 수 있는 건 떠올리는 것 뿐이었어요. 몸도 말도 없어졌지만, 어떤 언어들이 제 몸을 가득 채우고 있었어요. 제 몸은 어떤 사원이 되어 있었어요. 많은 것들이 기억 났어요. 선배랑 살을 섞던 그날 밤, 언젠가 다른 사람을 안아 볼 선배를 생각하면서 선배의 가슴에 손을 얹어 보던 밤. 불면이 온몸에 스며들어 잠이 들지 못 하는 선배를 품에 안고 잠이 들었던 날들. 손을 잡으면 손으로 번지던 온기. 한참이고 온기가 제 손에 스며들어 있었죠. 문득 어떤 충동이 강하게 들었어요. 선배에게로 가야지. 몸도 말도 없이 빈 제가 빈 이후에 처음으로 느낀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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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

종톨녀 / 트리거 주의 / 날조 주의

살다가 알게 된 것은, 걸어 다니는 현상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런 능력을 지니게 된 이유를 나는 모릅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게 된 현상에 관해 나는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 퇴근길에 나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평소와 같은 퇴근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빨려 들어가 듯이 한 현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걸어 다니는 폭풍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나무를 쓰러뜨리고, 건물을 무너뜨리는 그 위력에 비해 현상의 모습은 지나치게 수수했습니다. 조금 마른 편에 키가 크다는 점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외꺼풀 눈이 크고 안광이 선명할 정도로 뚜렷했습니다. 현상도 나를 보고 있었습니다. 현상은 버스에 올라타고 나서도 나를 보고 있었습니다. 나 또한 그 애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정확히는 뗄 수 없었습니다. * 현상을 다시 만나게 된 곳은 한 코인 세탁소였습니다. 다시 만난 우리는 서로를 빤히 쳐다보는 것 제외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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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falxdptj

종녀톨녀 / 트리거 주의 / 날조 주의 / 개인 해석 다분

종수 선배에게 전해 주신 이메일은 잘 받아 보았어요. 예약 전송 시간이 오늘로 되어 있었나 봐요. 아직도 잘 실감이 나지 않아요. 스물아홉인 종수 선배의 끝이. 답은 받지 못 하시겠네요. 그렇지만 하나하나 적어 보려고요. 받은 어제 답장을 써 보았는데, 전혀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지금부터 다시 적어 보려고 해요. 비록 전하지 못 할 이메일이더라도. 이메일에서 선배가 걱정했던 것과 달리 저는 잘 자요. 잘 먹기도 하고요. 늘 선배 걱정을 했어요. 선배가 유튜브 악플들을 보면서 견딘 시간들을 자주 생각해요. 선배는 익숙한 듯 제 앞에서 그런 악플들을 표정 변화 없이 하나하나 읽어내리시곤 했지만, 저는 그때마다 걱정했어요. 예민한 사람인데 저 악플로 인해 불면이 더욱 심해지지 않을까, 견뎌내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지만 그 견딤에 대한 역치가 한계를 넘어버리면 불안함도,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데 그 한계를 넘어버리지 않을까 하고요. 넘겨짚는 건 아니지만, 어쩌면, 그 역치가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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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색

종톨녀 / 트리거 주의 / 날조 주의 / 개인 해석 주의

돌아갈 수 없으며 무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모스크바의 한 가게에서 사 온 컵이 깨졌을 때였다. 흰 배경에 남색 무늬가 번지고 있던 컵이었다. 양말을 신고 청소기를 밀며 되새긴다. 그 어떤 것도 무뎌지지 않는다. 컵이 깨지기 전날, 그는 늘 그랬듯이 모든 것을 되새기고 있었다. 무릎이 스치기만 해도 떨렸던 순간들, 주찬양의 큰 외꺼풀 눈, 말랑말랑한 주찬양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잤던 밤들, 주찬양에게서 나던 비누 냄새, 손을 맞대어 보면 손바닥에 번지던 온기. 모든 것이 어제처럼 선명했다. 삼 년이 지난 일임에도 어제처럼 선명했다. 잊힐 줄 알았지만, 잊히지 않았다. 그런 순간들마다 가슴에 번져 나가던 온기마저 생생히 기억한다. 지금 가슴 빈 곳을 가득 메우던 온기와 똑같은 온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 온기는 이따금 눈가까지 번져갔다. 그럴 때마다 할 수 있는 것은 견디는 것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가 잘하는 것들 중 하나가 견디는 것이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각성 상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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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시의 바다

종톨녀 / 트리거 주의 / 날조 주의 / 개인 해석 多

https://youtu.be/8Erdny-jZW4?si=dTEAlHIyElexwsE9 00 : 00 다시 붙잡기 위해 돌아온 건 아니에요. 그렇게 하기에는 이미 너무 지쳤어요. 작별을 건네기 위해 돌아왔어요. 여름 나시 원피스를 입은 주찬양이 최종수의 앞에 서 있었다. 가까운 거리가 아님에도 그는 그녀의 목소리를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겨울 바람이 날카로웠지만, 그녀는 흔들림 없이 꼿꼿이 최종수의 앞에 서 있었다. 그 어떤 흔들림도 없었다. 이미 죽은 건가 자문해 보아도 그녀는 지나치게 생생했다. 그녀의 주변은 반투명한 토우 같은 것들이 감싸고 있었다. 그것들이 그녀가 더 선명하게 보이도록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 누구도 가르쳐 준 적 없는데도, 그는 그 반투명한 토우 같은 것들이 이미 죽은 지 한참은 지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 그것들은 이미 비어서 없어진 염(念)들이었다. 그것들이 선명해진 건 그가 그것들이 염(念)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였다. 그렇지만 두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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